용담염씨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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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염씨에 대하여 문의합니다.
- 이전글궁금한게 있습니다 0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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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안녕하십니까? 청지기입니다.
문의하신 용담염씨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범위내에서 설명드립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용담이던, 파평, 청주, 괴산염씨 등등 통계청 조사에서 나오는
많은 종류의 다른 염씨 모두가 파주염씨이며, 단일본입니다.
그 이유는 각각의 다른 본관이라고 하는 분들의 선조로 거슬러 올라가
중시조와 시조를 맞춰보면 모두가 중시조 ‘충경공 제신’선조님이고,
시조는 ‘삼한공신 형명’할아버지 한분에게로 똑같이 연결되니 그런 것입니다.
아버지가 한 사람이면 그 자녀들은 모두가 한 형제인 것이지요.
곳곳에 많은 설명이 있으니 시간내어 잘 훑어 보시면 이해가 되리라 봅니다.
고려말 1388년 무진지화와 이성계와 최영에게 고려의 멸망이 시작될 때,
고려의 명문세도가인 우리 염문도 그들의 표적이 되어 불운의 운명은 시작되었습니다.
갓난아기까지 염씨라고 알려지면 모두가 피살되었으므로
살아계신 몇 분만이 개성을 떠나 전국으로 피해 숨어 지냈지요.
장남이신 국파공 선조님 후손은 전남 나주로 가시고, 둘째 동정공 선조님 후손은 경기 여주지역, 셋째 청강공 선조님 후손은 이북 북청, 단천 등지로 가신 것으로 짐작합니다.
고려가 멸망하면서 왕(王)씨들이 全, 玉씨 등으로 한 것처럼
우리 선조님들은 다행히 성은 바꾸지 않고, 본관만 현재 나타난 것처럼
그 사시는 지역명 등을 본떠 바꾸게 되었으리라 봅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웠으므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하여 변신 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용담지역은 경기도 여주의 용담리로 알고 있는데, 동정공 선조님께서 한창 벼슬에 계실때에 별장인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동정공 선조님의 후손들께서 그곳을 정하여 살면서 본관도 변신하여 살았으리라 봅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에도 응시할 수 없어 벼슬하신 분들이 없다가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 국란이 발생하자 전국에서 우리 선조님들께서 의병을 일으켜 싸우시다가 순직하시는 일들이 일어났고, 그 귀한 목숨의 댓가로 공신 칭호가 내려지고, 그 후로 우리 염씨가 드디어 세상에 빛을 받을 수가 있었고, 벼슬길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지요.
대표적인 분으로 언상장군, 걸, 서, 경, 홍립 장군 등 많으십니다.
용담염씨를 쓰던 대표적인 분으로 조선 25대 철종임금 외가가 있습니다.
5월 7일 강화사단 사향때 강화에 가면 그날 함께 제사 모시는 철종임금의 외숙, 외조부 묘소의 비문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상 좁은 식견으로 간단히 답변합니다.
우선 홈의 자료를 살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