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거(廉居) : ?~844(문성왕 6). 신라 말의 선승. 염거(廉巨)라고도하며, 가지산파의 2대 조사이다. 도의의 제자로서, 도의가 진전사에서 입적할 때 오직 그에게 전심하고 선을 널리 펼 것을 당부하였다. 주로 설악산 억성사에 머무르면서 선법의 홍포에 주력하였고, 사교를 배척하였다. 항상 일심을 닦고 밝혀서 삼계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였다. 선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던 시대에 오직 일념무주(一念無住)만을 의지하고 지내다가, 체징에게 법맥을 전하여 가지산파를 대성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뒤 입적하였다. 탑은 국보 제104호로 지정되었으며, 원래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법흥사지에 있었으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참고문헌 : 조선금석총람, 조선불교사.
염거
화상탑에 대한 설명
부도란
득도한 대선사가 죽은 뒤에 그 유골을 안치하기 위하여 세운 둥근 돌탑을
말하는데, 이 부도는 현존하는 부도 중 가장 오래고 건립연대도 확실한 8각원당형 부도이다.
상하 각부가 모두 8 각인데, 하대 각면에 사자를 새겼고, 낮은 간석에는 안상 안에 향로를 새기고 이중으로 연잎을 새긴 상대석을 얹었다.
상대석 위의 받침에도 각면 안상 안에 천부상을 1구씩 양각하였다.
탑신은 4면에 문호를, 다른 4면엔 사천왕상을 새겼다.
옥개는 목조건물의 양식을 따라 연목 기왓골 막새기와 등을 충실히 모각하고,
옥개 뒷면에도 비천이 양각되었다.
이 부도는 원래의 위치에서 1914년 탑골공원에 옮겼다가, 다시 경복궁 후원으로 다시 2005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안치되었다. 이전 당시에 탑 안에서 금동탑지판이 발견되어, 신라 문성왕 6년(당 회창 4년, 844)에 세워 진 것임을 알 수 있는데 명문은 다음과
같다.
會昌四年歲次甲子秀秋之月兩旬九日遷化
廉居和尙塔去釋迦牟
尼佛入涅槃一千八百四年牟 當比國慶應大王之時
회창 4년 갑자년 늦가을 29일 세상을 뜨다.
염거화상탑은 석가모니불이 돌아가신지 1804년에 세우니
이는 신라 문성왕 때가 된다.
비록 명문의 내용이 화상 개인의 천화를 전한다 하더라도, 금동탑지판은 부도안에서 발견된 최고의
것으로서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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