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실

옥천의 효부 파주염씨 기적비    (상식)    
    2007-08-12 (일) 20:06   조회:862  
과부 아닌 과부로 수절한 파주 염씨

파주 염씨는 1907년 염후훈의 따님으로 태어났다.
성품이 유순하고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고 동기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다.

그는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방아실에 살고 있던 문화 유씨가문으로 시집을 왔다.
시집온지 두 달만에 남편이 일본으로 돈을 벌겠다고 가 버렸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오자마자 남편이 외국으로 훌쩍 떠나고 나니 과부 아닌 과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안 형편이 워낙 가난하여 먹고 입고 사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그래서 파주 염씨는 닥치는 대로 농촌의 거친 일을 해냈다.
땔나무도 하고, 밭도 매고, 품도 팔았다.

그리하여 약간의 돈이 생기면 그의 시부모 봉양에 힘썼다.
실로 눈물겨운 생활의 연속이 남편이 타국에 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염씨는 조금도 불평없이 부모를 모시고 집안일을 하며
남편 떠난 뒤에 낳은 외동 딸을 성실히 양육하였다.

이윽고 3년 만에 남편이 일본에서 귀국하였다.
그런데 남편은 뜻밖에도 첩을 얻어 살다가 함께 귀국한 것이다.
그때부터 남편에게 버림받고 과부 아닌 과부생활은 계속 되었다.

혹 시부모나 이웃들이 그의 남편이 의리가 없고,
인륜 도덕에 어긋난 짓을 한다고 나무라면, 염씨가 나서서,
“남자로 태어나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도리어 남편을 감싸고 돌았고,
일본에서 데리고 온 첩에게도 온공히 대했다고 한다.

그후 남편은 첩을 데리고 나가 살게 되었고,
염씨는 부모 모시고 가난한 집안 살림을 하면서 시동생들과 여러 조카를 키워냈다.
염씨는 자기 자신에게 온갖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굽히지 않고 항상 부드럽고
온화한 기색을 잃지 않고 살았다 한다.

새벽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오직 일을 하면서 일평생을 과부 아닌 과부로
수절하며 고생스럽게 참고 살아낸 그의 생애를 그의 후손들이 선양하고,
또 그의 한 많은 일생을 위무해 드리기 위하여 비석을 세우니 그 비면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전한다.

그는 74세 되던 1980년에 작고하였다.

“효부 파주 염씨 기적비"
그리고 기적비문에 그의 생애가 소상히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위치나 사진은 아래에 있음.
http://www.okcheon.chungbuk.kr/intro/intro_10_03_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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