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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시조이신 충경공
1세조 선조님과 그 아드님이신 2세조(국파공, 동정공, 청강공 삼형제)의 두 세조를 모신 사단이래서 '양세 사단'이라고도 하며, 제단용으로 만든 제단(祭壇)이다. 실묘(實墓)가 이북에 있는 관계로 해마다 제대로 제향을 받들 수가 없는 안타까움에 후손들이 뜻을 모아 1987. 11. 22 개막식을 거행하였다.
현재의 강화에 사단을 설립하게 된 것은 이 위치가 이분들께서 고려시대에 활약하고
사시던 개성과 가깝고, 묘소가 있는 장단군과도 멀지않고, 또한 이 곳이 조선시대의 '강화도령'으로 유명한 '철종임금'의 외가가 있는
곳인데, 그 후손께서 사단을 만들 수 있는 부지를 제공하여 줌으로써 이곳에 설립케 된 것이다.
제일
위에 중시조이신 충경공 휘 염제신 1세조의 단이고, 그 밑 맨 왼쪽에 장남이신 2세조 국파공 휘 염국보, 가운데가 둘째 아드님이신 동정공
휘 염흥방, 맨 오른쪽이 셋째 아드님이신 청강공 휘 염정수의 단으로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강화읍에서 전등사 방향으로 가는 길 왼쪽옆에 중시조의 신도비가 있고, 신도비에서 약 200여 미터 마을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전통 한옥집이
보이는데, 이곳이 '철종임금의 외가'이고 오른쪽으로 접어 올라가면 강화사단이며, 사단에서 마을 건너 낮으막한 언덕에 철종임금의 외조부 등의 묘소가
있다.
제향은
매년 봄 4월 말에서 5월초 일요일에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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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은 조선시대 1853년(철종 4년)에 강화유수 鄭基世에게 명하여 건립한 것으로 후에 철종임금의 외숙인 염보길(廉補吉)이 살았으며, 원래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로 두는 'H'자집 배치로 45칸이었으나 행랑채 일부가 헐어져 지금은 'ㄷ'자 모양의 몸채만 남아있다. 사랑채를 일자로 곧장 연결시켜 화장담으로 간략하게 구획한게 특이하다. 당시 일반 사대부집의 웅장한 규모와는 다르게 건축법도에 맞도록 고졸(古拙)하게 지은 건물이다.
이 집뒤로 50여미터 지점에 중시조 휘 제신과, 그아드님 3형제분을 제향하는 파주염씨 강화사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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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철종 10년(1859) 강화유수 조충식이 철종의 외조부 3대의 묘를 정화하고 비석을 세워 왕족의 위신을 세웠다 한다. 철종은 왕위에 오른 뒤 외가 5대에게 벼슬을 추증케 하고 선원면 냉정리에 전답 10여 정보를 하사 하는 등 특전을 베풀었다. 3기의 묘소 중 맨 좌측은 철종임금의 외고조부 판서공(判書公) '염상임'의 묘소인데, 묘비에는 「조선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용담염공 휘 상임지묘」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숭정기원후기미팔월일입 이란 글씨로 보아 철종 10년(1859)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은 철종임금의 외증조부 찬성공(贊成公) '염덕석'의 묘소로 묘비에는 「조선 증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용담염공 휘 덕석지묘」라 새겨져 있고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있다. 우측은 철종임금의 외할아버지 '염성화'(星華)의 묘소로 묘비에는 「조선 증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大匡輔國 崇祿大夫 議政府 領議政) 용담염공 휘 성화지묘」라 새겨져 있고 장명등과 좌우에 망주석 양석등의 석물을 갖추었다. '염성화'의 자(字)는 성화(成化)로 파주염씨 동정공계 17세손이다.
조선 제25대 임금인 철종은 초명이 원범(元範)이고, 자(字)는 도승(道升)이며, 호는 대용재(大勇齋)이다. 그는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며,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명으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생모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인데 영의정에 추증된 염성화(廉成化)의 딸이다. 이 묘소는 중시조님 묘소 건너편에 있으며, 중시조님 묘소 제향시 같이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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